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폭로 정치’,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선거는 정책과 비전, 후보의 역량을 검증하는 민주주의의 축제다. 그러나 우리 정치의 현실은 어떠한가. 선거가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정책은 사라지고 의혹과 폭로, 흑색선전만 난무하는 진흙탕 싸움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 불거진 이른바 ‘육견단체 3억 원 입법 로비 의혹’ 역시 씁쓸한 정치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논란의 출발점은 한 언론사의 보도였다. 해당 보도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신고 내용을 근거로 경북지역 육견 관련 단체가 국회의원 측에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정작 기사 본문에는 "신고인 측 주장에 기반한 것이며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단서가 명시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삽시간에 정치권으로 번졌고, 일부에서는 이를 특정 정당 후보와 연결하며 선거 쟁점으로 확대시켰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신고가 접수됐다는 사실과 신고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권익위에 신고가 접수됐다고 해서 그것이 곧 범죄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신고 가운데 상당수는 조사 과정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가운데 하나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의혹이 제기됐다고 해서 곧바로 범죄자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선거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이번 사안에서 주목할 대목은 의혹의 당사자로 거론된 육견단체TF팀 조환로 팀장의 공개 반박이다.
조 팀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금품 요구를 받은 적도, 돈을 전달한 적도 없다"고 단언했다. 특히 자신이 40년 민주당 진성 당원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며 "그런 일이 있었다면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했을 사람도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또 민주당 측이 연결고리로 제시한 안재민 상주시장 후보와는 "명함조차 주고받은 적 없는 사이"라고 밝혔다.
물론 이러한 반박 역시 일방의 주장일 수 있다. 그러나 의혹 제기 또한 일방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균형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일부 정치권과 언론은 이러한 균형 감각을 잃은 듯하다.
사실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의혹을 마치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여기에 정치적 해석을 덧붙이며 선거에 활용하려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전투표 직전 의혹이 제기되고, 곧바로 정치권 논평과 언론 보도가 이어진 과정은 적지 않은 의문을 남긴다.
우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유권자 입장에서는 왜 하필 그 시점이었는지, 왜 검증되지 않은 의혹이 선거 직전에 집중적으로 확산됐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선거는 의혹 제기만으로 승패를 좌우하는 게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의혹이 사실이라면 철저한 수사와 법적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반대로 허위 사실이라면 의혹을 퍼뜨린 사람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증거와 사실이다.
정치는 의혹을 제기할 자유가 있다. 언론 역시 의혹을 보도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한 사람의 명예를 무너뜨리고 선거 결과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논란에서 안타까운 점은 개식용종식법으로 생계 위기에 몰린 농가들까지 정치 공방의 소재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생존권을 걱정하는 농민들의 절박함은 선거 전략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목소리는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정책적 해결의 대상으로 다뤄져야 한다.
선거는 끝나면 결과가 나온다.
그러나 근거 없는 의혹과 정치공작이 남긴 상처는 오래간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힘은 폭로의 크기가 아니라 사실의 무게에서 나온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의혹이 아니라 더 많은 진실이다.
유권자는 의혹에 흔들리는 군중이 아니라 사실을 판단하는 주권자라는 사실을 정치권과 언론 모두 잊지 말아야 한다.
[칼럼] 상주시언론협회 김희철 회장, "의혹은 증거가 아니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폭로 정치’, 민주주의를 좀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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